2014년 4월 30일 수요일

유족들에게 보내는 '잔혹한 예언'


유족들에게 보내는 '잔혹한 예언'

2. 단원고 학생이 언론에 보내는 편지 (클릭!)

최호선 영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 4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족들에게 '잔혹한 예언'이라는 제목의 조언을 보냈다.

글의 요지를 딱 세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 가족들은 이제부터 정부, 선박회사, 보험사 등 사고처리 분야의 프로들과 상대하게 된다.

2. 정부와 선박회사, 보험사들은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족속들이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3. 그것이 바로 이 사고의 원인제공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해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조언일 수도 있다. 아래는 페이스북 글의 전문과 원문 캡쳐 사진이다.

아이들이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고문이 끝난 듯합니다. 이제 실종자 가족들은 빨리 유족이 되고 싶으실 겁니다. 아이를 찾아서 떠난 분들의 빈자리가 달리 보이실겁니다.

혹시나 시신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하고, 여행 떠날 때 모습과 너무 많이 달라지지 말아야할텐데, 내 아이의 그순간이 너무 많이 고통스럽지는 않았어야 할텐데 생각하게 되실겁니다.

시신인양을 책임지는 정부측에 분노하고 재촉하는 마음 한편으로는 의지하고 제발 빨리 찾아 달라고 빌게됩니다.

시신 인양에 민간잠수사를 배제하려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제 판단으로는 정부에서 수습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가 민간전문가를 배제하는 중요한 원인중 하나입니다.

시신을 찾아서 장례를 치르고나면 어떻게 될까요? 유족은 이미 심신이 피폐해져있고 이분들의 상대는 정부, 선박측 보험사등 사고처리 이 분야의 프로들입니다.

보상과 배상은 왜 중요할까요? 사별의 고통이 돈으로 해결될까요?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언급하기도 싫은 노인네가 시체장사 운운하면서 모욕한 일들을 유족들은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보상과 배상은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희생자와 가족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최소한의 위로를 받는 방법입니다. 사실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 돈 따위는 절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보상과 배상을 받아야 합니다. 즐거운 여행길에 참담한 사고를 당한 아이들의 넋이라도 위로 하기위해 이 사고의 원인제공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해야합니다.

저에게 혹시 물으신다면 개별적인 장례와 발인을 멈추라고 조언하겠습니다. 인양된 시신은 친구들이 다 빠져 나올때까지 안치하고 수습 과정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장례를 치르라고 조언하고싶습니다.

유족은 정부와 보험사라는 프로들을 상대하는 지난한 싸움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족속들입니다. 결말이 미리 보여서 이 잔혹한 글을 씁니다. 철저하게 준비하셔야 됩니다. 절대로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도 마세요.

이제 아이들의 따뜻한 뺨을 다시 만질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에 버리고 도망친 이 사회의 책임은 반드시 물으셔야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런 글을 쓰게 되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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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9일 화요일

매달린 어른 끌어올리는 10대들… 한가하게 통화하는 선원



[동아일보]

[세월호 참사/침몰 당시 구조장면]

9분 45초분량 해경 동영상 보니


28일 해양경찰청이 뒤늦게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동영상에는 구조 과정의 급박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그동안 사진으로만 확인됐던 선장 이준석 씨(69) 등 선원들의 탈출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배를 버리고 경비정에 몸을 싣는 선원들의 표정에서는 남은 승객들에 대한 걱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퇴선’을 결정한 승객들은 구명조끼만 믿고 바다로 몸을 던져야 했다. 또 물속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고무보트 옆줄에 매달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선장의 퇴선 명령만 기다리던 300여 명의 승객은 세월호가 뱃머리만 남긴 채 바닷속으로 잠길 때까지 끝내 보이지 않았다.

○ 경비정 도착 당시 세월호 이미 50도 기울어

16일 오전 9시 28분 목포해양경찰서 경비정 123정이 세월호 구조를 위해 긴급 출동했다. 안개 때문에 멀리 세월호 모습은 흐릿하게 보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세월호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배는 이미 50도 가까이 기운 상태. 하지만 선체 위에는 단 한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500명 가까운 승객과 승무원이 탄 여객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단지 배 앞머리에 실린 컨테이너 10여 개가 어지럽게 흩어진 모습에서 ‘침몰’을 알 수 있었다.

첫 구조가 이뤄진 것은 오전 9시 39분. 해경 3명을 태운 보트가 세월호 3층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4명이 손을 흔들어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은 승객이 아니었다. 3등 기관사 이수진 씨(25·여) 등 세월호 기관부 선원들이었다. 이들이 경비정으로 옮겨 탄 뒤에야 승객에 대한 구조가 시작됐다. 기울어가는 배를 이기지 못한 승객들은 구명조끼만 입은 채 하나둘 바다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보트를 향해 헤엄쳤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보트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바다 위에 남긴 채 경비정으로 갔다. 오전 9시 50분 승객을 가득 태운 보트 한 대가 다시 경비정에 도착했다. 몸은 바닷속에 있고 얼굴만 간신히 위로 내놓은 승객 4명이 보트 양쪽에 매달려 있었다. 안산 단원고 학생으로 보이는 10대 남녀 4명은 먼저 경비정에 오르지 않고 매달린 어른들을 함께 끌어올렸다.

○ 더딘 승객 구조… 승무원 구조는 신속

승객 구조는 더디기만 했다. 그러나 선원들 구조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오전 9시 46분 세월호 5층 측면이 수면 위 2, 3m까지 기운 상태. 해경은 5층 맨 앞 조타실에 경비정을 댔다. 조타실에는 선장 이 씨를 비롯해 3등 항해사 박한결 씨(26·여) 등 여러 명의 선원이 있었다. 이들은 해경의 도움을 받아 차례로 경비정에 몸을 실었다. 선장 이 씨는 속옷 차림이었다. 행여나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질까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승객들을 걱정하는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선원들의 이상한 행동은 또 있었다. 해경들에 의해 구조돼 경비정으로 옮겨진 1등 항해사 강모 씨. 오전 10시 21분 그는 승객을 태운 보트가 경비정을 오가는데도 이들을 끌어올리는 등 구조를 돕지 않았다. 오히려 느릿느릿 선상을 걸으며 휴대전화로 어딘가 통화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선원들 중에는 유일하게 조타수 오용석 씨(58)가 구조활동에 동참한 것이 확인됐다. 오 씨는 해경들을 도와 선실 유리창을 깨거나 바다에 빠진 승객들을 끌어올렸다.

그 사이에도 세월호는 속절없이 기울어갔다. 오전 10시 17분 배는 90도 이상 기울어 좌현 전체가 물속에 잠겼다. 간혹 물속에서 헤엄쳐 나오거나 우현에서 헬기를 통해 구조된 승객의 모습만 확인됐다. 그로부터 약 22분 뒤 세월호는 선수 일부만 남기고 결국 침몰했다. 300명 넘는 승객은 구조를 바라는 손길 한 번 내밀지 못했다.

○ 카메라에 담지 못한 선원들의 모습

배와 승객을 버리고 경비정으로 탈출한 선장 이 씨 등 선원 15명은 오전 10시 30분경 근처에 있던 관공선(급수선) 진도 707호(30t) 등 두 척의 배로 옮겼다. 진도 707호는 오전 11시 12분 사고 해역에서 24km 떨어진 팽목항에 도착했다. 이 씨 등 선원 12명은 진도읍에 있는 병원으로, 3등 항해사 박 씨 등 3명은 진도실내체육관으로 갔다. 이 씨와 같은 병실에 있었던 승객 강병기 씨(41·화물기사)는 “진도 707호에서 작업복·제복을 입고 있던 사람 4명이 어느새 사복으로 갈아입어 의아했다”며 “병원에 온 사람들 중 속옷 차림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선장이 젖은 지폐를 말릴 때 짙은 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선장 이 씨 등 12명은 경상으로 분류돼 16일 오후 3시경 진도실내체육관으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119대원이 파악한 선원 6명의 행선지는 ‘귀가’(안산)로 분류됐다. 해남소방서는 선장 이 씨 등 6명이 “집에 가겠다”고 밝힌 것인지, 단체 이동버스를 타 귀가로 구분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성호 starsky@donga.com / 목포=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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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학생이 ‘목숨 걸고’ 朴대통령에 던진 한마디…“헌법을 위반하셨습니다”

고3 학생이 ‘목숨 걸고’ 朴대통령에 던진 한마디…“헌법을 위반하셨습니다”
  • 입력:2014.04.29 11:09
  • 수정:2014.04.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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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대통령께서 헌법을 위반하셨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부실한 대응으로 인한 ‘성난 민심’이 청와대 홈페이지로 몰려들고 있는 가운데 자신을 고3학생이라고 소개한 네티즌의 글이 눈길을 끌고 있다.

네티즌 이모양은 지난 27일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목숨을 걸고 청와대 게시판에 이글을 남깁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 양이 주장하는 박 대통령이 위반한 헌법 조항은 ▲제1조 1항과 2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7조 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등이다.

이 양은 “어떠십니까, 이에 대해 할말이 있으십니까, 책임을 지신다고 말씀까지 하셨으면 그 책임은 꼭 지셔야 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양의 글에 박모씨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헌법인데, 어린 학생이 똑똑하네요”라고, 변모씨는 “이렇게 영민한 학생이, 헌법을 나보다도 잘 아는 학생이 목숨을 걸고 이야기한다는 말이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라는 반응을 보냈다.

28일엔 박성미 씨가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올린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인터넷을 달궜다. 여기서 박씨는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막대한 권한과 비싼 월급, 고급 식사와 자가 비행기와 경호원과 그 모든 대우는 책임에 대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

인터뷰] 강대영 잠수부 "언딘 김 이사가 재차 양보 요청

[인터뷰] 강대영 잠수부 "언딘 김 이사가 재차 양보 요청"JTBC|손석희입력 14.04.29 22:19 (수정 14.04.29 22:20)
[앵커]

언딘 측의 반론을 전해드렸습니다만, 간단한 것부터 말씀드리면 당시 사고해역에 풍랑주의보가 없었다는 것은 저희가 이미 기상청에도 확인해서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민간 잠수사들의 실적을 언딘이 가로챘다는 의혹은 워낙 엄중한 문제라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고 어제(28일) 말씀 드린 바 있는데요, 보도를 결심하는데 결정적이었던 것은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한 복수의 민간 잠수사들의 증언이었습니다. 언딘 측에서 저희의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나서자 추가 증언이 나왔습니다. 당시 민간 구조팀을 조직해서 사고해역에 나갔던 전북 부안군 위도 출신의 잠수사인 강대영 씨의 증언입니다. 강대영 씨에 따르면 언딘의 양보 요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당시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들보다 더 좋은 잠수 장비를 갖추고 있었던 언딘이 시신을 바로 인양하지 않고 지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민간 잠수사들이 시신을 발견한 것은 새벽 4시 경이지만 언딘이 시신을 인양한 시각은 당일 밤 자정이 다 됐을 시각이어서 발견부터 인양까지 거의 하루가 소요된 셈인데요. 당시 상황을 증언한 강대영 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앵커]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에 몇 시쯤 이었습니까? 19일 새벽?

[강대영/잠수부 : 새벽 4시 그 정도 됐을 겁니다.]

[앵커]

그때 바로 수습해서 나오시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요.

[강대영/잠수부 : 두 번째 다이버가 들어갔는데 시신을 보고 창문을 깨려고 했지만 망치도 작은 걸 가져갔었고 창문이 파기가 안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왔을 때 왜 안됐냐. 소리가 어떻게 나더냐 강한 '쨍쨍'하는 소리가 나더냐 둔탁하게 '턱턱' 소리가 나더냐 그래서 '턱턱' 소리가 난다 그래서 창문이 혹시 방탄유리거나 필름이 들어있는 그런 창일까 싶어 제가 다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에 물이 너무 세지고 시야가 둔탁하게 올라와서 잠시 멈췄습니다.]

[앵커]

그러고 나서 다시 바지선으로 올라오셨다는 얘기죠?

[강대영/잠수부 : 경비정으로.]

[앵커]

다시 들어가려고 하셨을 텐데 그때 다시 못 들어가신 이유는요?

[강대영/잠수부 : 그때 제가 다시 들어갔었죠. 큰 도끼하고 긴 창을 가지고 들어가서 끊으려고 들어갔는데 가장 물살이 셀 때쯤이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어떤 연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호스도 많이 주라고 했고 줄도 많이 줬을 텐데도 바로 그 유리창 앞에서 다가설 수가 없었어요, 뒤에서 계속 당기는 것 때문에. 그건 조류에 의할 수도 있고 제가 보조 줄을 또 하나 차고 갔었는데 그런 여러 가지 영향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서 거기서 20여 분 정도밖에 일을 못 하고 다시 나왔습니다.]

[앵커]

그 이후에 언딘이나 해경 쪽에서 '시신 수습은 좀 미뤄야 된다'는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강대영/잠수부 : 당시 그 김 이사라고 하시는 분이 현장의 작업장소에는 없었는데 언제 올라왔는지 자꾸 와서 "선배님, 이거 저희가 전체 맡아서 하는 일인데 제가 이런 일을 다른 업체에 뺏기게 되면 내가 회사 사장으로부터 굉장히 실망을 얻는다, 당신도 회사생활을 해봤는지 몰라도 이런 경우 내가 뺏기게 되면 얼마나 큰 손실이 있겠느냐." 이러면서 좀 더 미뤄줬으면, 그리고 또 뭐 원하는 게 있느냐.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앵커]

아 그러니까 수습을 좀 미뤄 달라? 원하는 게 있느냐는 어떤 뜻이었습니까?

[강대영/잠수부 : 글쎄 뭐 저는...뭔 뜻인지는 몰라도 저는 원하는 것도 없고 단순히 봉사하러 왔기 때문에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앵커]

그다음엔 실제로 작업이 미뤄졌습니까?

[강대영/잠수부 : 제 구성원의 팀이 실제로 수중업을 하고 있는 그런 팀원들이 있고 제가 이제 로드 캐스팅해서 데려간 팀이 합쳐진 팀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이 좀 달랐던 거 같습니다. 저는 그 일을 이루고 싶었고 저쪽 팀은 언딘하고 얘기가 됐는지 어땠는지 확실한 답을 내리진 않았어요. 때마침 굉장히 조류가 세지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제 기억엔…그런데 제가 머뭇거리고 있던 순간 언딘 김 이사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재삼 재차 부탁하길래 저도 잠시 시간을 달라 그렇게 생각을 하고 좀 미뤘었죠.]

[앵커]

'재삼 부탁을 했다'는 것은 회사 쪽, 자기 체면을 봐서 좀 늦춰 달라 그런 얘기였나요?

[강대영/잠수부 : 뭐, 좀 양보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앵커]

언딘 쪽에 양보를 해달라?

[강대영/잠수부 : 예.]

[앵커]

그래서 뭐라고 답을 하셨나요?

[강대영/잠수부 : 저는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도 사실 당시는 조류도 워낙 셌고, 또 저희가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경비정 피정에 작업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왜 그랬냐하면 저희가 공략지점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유도라인에 경비정을 잡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오랜 경험의 판단으로 계속 파도치는데 잡을 수는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상황은 이 배가 가면 못 하는데 제 생각은 더 큰 생각이 있었어요. 우리가 빨리 양보를 하고 가면 장비도 좋고 여러 가지 경륜이 많은 언딘사 작업자들이 바로 작업이 이어진다. 라면 우리보다 훨씬 효율적인 구조 작업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 그때 우린 그 배를 타서 서포트를 하고 하면 굉장히 좋겠다. 라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앵커]

그 당시에 실제로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작업이 미뤄진 상황이었는데, 그 뒤에 강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적당한 시기에 시신 수습 내지 구조 작업이 이뤄졌다고 보십니까?

[강대영/잠수부 : 글쎄 저는 그 배가 훨씬 유리하고 구조를 하는데 훨씬 효율적일 것 같아서 양보하고 나갔는데 그 후로 그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더라고요. 굉장히 화도 나고 실망스럽고.]

[앵커]

왜 안 이뤄졌다고 보십니까? 양보하라고 했으면 자신들이 바로 들어갔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강대영/잠수부 : 당연히 그랬어야죠. 바로 바통을 받아서 작업은 유지하면서 저희는 빠져나왔겠죠. 그래야 했는데 옆에 붙은 언딘 잠수기를 실은 배까지도 철수하더라고요.]

[앵커]

왜 철수를 했습니까? 그건 알 수가 없나요?

[강대영/잠수부 : 글쎄요, 거기까지는 잘… 저는 저희보다 효율적이고 당시 잠수사가 들어갈 수 있는 라인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저쪽 배는 굉장한 장비가 실려있고 잠수부가 둘이 들어가서 얼마든지 도움을 주면서 2인 1조로 할 수 있는 장비가 내 눈에 보였기 때문에 저 배가 이로울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앵커]

그 당시 조류가 굉장히 빨라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까?

[강대영/잠수부 : 그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작업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일단 유리창을 파괴하고 들어가면 그때부턴 얼마든지 살아있는 학생들을 찾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저희한테 이 문제를 처음 제보해주신 분께선 그 당시 양보하라고 얘기하면서 "이렇게 되면 윗선이 곤란해지지 않느냐.", 그 윗선이라는 얘기가 어떻게 나온 겁니까?

[강대영/잠수부 : 저는 그 얘기를 듣지 못했고,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같은 팀이었지만 그쪽의 입장과 저의 입장은 약간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몇 번에 걸쳐서 김 이사님하고 그쪽 팀하고 미팅하는 걸 보긴 했는데 그런 얘기든 저런 얘기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저희 할 일만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앵커]

처음에 말씀하신 8명의 팀 가운데 강 선생님 같은 분도 계셨겠지만, 또 그중에 몇 분은 언딘 쪽과 가까운 쪽이 있었다, 그 분들하고 김 이사라는 분하고 회의하는 걸 봤다, 그런 말씀이신가요?

[강대영/잠수부 : 가깝다기 보다는 김 이사님하고 똑같은 종류의 일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뭐 상생하는 입장일 수도 있었겠죠.]

[앵커]

뭐 정확한 건 아닐 테고 아무튼 그분들 끼리 회의를 하고 그러더라 그런 말씀이신가요?

[강대영/잠수부 : 바로 경비정을 타고 내려오면서 서로 그렇게 저는 그 팀들끼리 '너는 뭐 그 팀으로 갈래? 안 갈래?' 뭐 그렇게 하면서 자기들끼리 뭐 그러더라고요. 어제도 어떤 친구는 왜 그 배한테 연락이 안 오지하는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앵커]

그 배라는 건 어떤 배?

[강대영/잠수부 : 그 배가 언딘 배죠. 뭐 그때가 뭐 자기들끼리 얘기가 된 거겠죠.]

[앵커]

정확한 건 아닐 수도 있고 일하다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씀이시죠.

[강대영/잠수부 : 네 물론 정확한 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그 친구들 입장에선 어디 가서든 일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고 직업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앵커]

그 부분이 궁금한데요. 상당히 촉박한 시간 속에서 한시라도 빨리 구해야 하는 상황인데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왜 미루라고 했는가. 참 안타깝네요. 왜 양보하고 미루라고 했느냐 하는 부분인데요.

[강대영/잠수부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고 당시 바로 이후부터 계속 의문스러운 부분이고 왜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는가. 어느 누구의 무엇 때문에 구조를 미루는지 난 그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 한마디로 잘라서 말 못하겠습니다.]

[앵커]

그러면 강 선생님께서는 많은 구조작업에 들어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서해 훼리호 사건도 그렇고요. 그때 상황과 지금 상황을 비교해 보자면 초기대응에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느끼시는 모양이죠?

[강대영/잠수부 : 확실히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문제죠.]

[앵커]

전체라 하면 무엇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강대영/잠수부 : 조류는 거기가 세다고 하나 배가 워낙 규모가 크고 에어포켓이 잡혀 가지고 선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거는 얼마든지 그 배의 균형이 이미 잡힌 겁니다. 구조작업은 얼마든지 침투해서 작업할 수 있는 최고의 상황이죠. 작은 배들은 에어포켓이 생겨 둥글면 바로 가라앉아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배는 격벽이 많이 있어서 에어포켓이 많이 잡혀버리는 경우죠. 그 정도라면 많은 시간을 그 필요로 안 해도 얼마든지 들어가서 작업할 수 있죠. 충분히 구조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종합해 볼때 저희가 다른분의 제보를 받아서 어제 방송한 내용, 다 맞다고 보십니까?

[강대영/잠수부 : 거의 맞다고 봅니다. 그럴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했고, 저한테도 그 유사한 이야기들을 했었으니까요. 뭐 낱말의 뜻은 똑같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볼때 거기에 준한 표현이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세월호와 용기 있는 공무원 죽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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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용기 있는 공무원 죽이는 사회

의자로 유리창 부수려 했지만 끝내…

의자로 유리창 부수려 했지만 끝내…

기사수정 | 2014-04-28 14: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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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16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을 당시 선내의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유리창을 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안타까운 장면이 확인됐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사고 당시 해경 헬기가 구조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세월호 선수 쪽 우현 창문(동그라미 안) 안에서 누군가 의자로 보이는 물체를 들고 창문을 내리치고 있었다(사진①). 

그 왼쪽 옆 창문 안에서도 한 사람이 손바닥으로 창문을 계속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사진②). 이 두 창문의 바로 오른편 밖에서는 해경 보트가 생존자들을 구조하고 있었지만 유리창 쪽으로는 접근이 이뤄지지 않았다. 

창문에 물이 차오르는 순간 그 안에서 빨간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이 바깥 상황을 보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갖다대는 장면도 있었다(사진③).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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