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6일 금요일

남자친구 고르는 법

"좋은 남자 친구 있니?"

서울의 모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후배의 딸이 부모를 만나러 인도네시아에 왔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자카르타에서 자란 학생이다. 

초등학교는 한국계 국제학교를 다녔지만, 중·고등학교는 외국계 국제학교를 다니고 뜻이 있어 한국대학으로 진학한 학생이다. 한국어는 물론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도 원어민 수준이다. 

할머니에게 "집에 갔다 올게요" 말하고 인도네시아에 왔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하긴 우리 집 아이들도 명절을 쇠러 인도네시아로 올 때가 있으니 교민들 사회에선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좋은 남자 친구 있니?"

분위기상 갑작스러운 질문도 아니었는데 후배의 딸은 부끄러워 하고 대답도 망설였다. 동석한 후배 부부도 궁금했는지 딸을 바라다봤다. 엄마는 그냥 웃는 낯이었지만 대답을 재촉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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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요. 잘 모르겠어요."

나는 크게 웃었다. 다른 부분은 이미 잘 적응했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에서만큼은 아직 확신이 서질 않은 것 같았다. 외국에 오래 살던 교포가 한국에 가면 영문 몰라 하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과 선배도 있고 동아리에도 남학생들이 있는데 선뜻 가릴 수가 없어서 아무도 가까이 사귀지 않아요."

"좋은 남자 친구 고르는 법 그거 간단해. 세 가지만 물어보면 돼, 내가 말해볼까?" 

후배 딸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좌중도 내게 시선을 모았다. 

"사귀고 싶은 사람이 생기잖아? 차 한잔 나눌 기회도 생기겠지. 그럼 이야기 중에 자연스럽게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던져봐. 그 사람의 친한 친구, 부모님, 선생님 등 주변 인물들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는 거야. 뭐 상대가 직장인이라면 직장 상사나 직장 분위기가 어떤지 질문할 수 있고. 현재 사회의 이슈,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하다 못해 함께 있는 장소의 분위기, 주변의 사물, 함께 마시는 음료수 한 잔에 대한 느낌 등 뭐든지 상관 없어. 

상대방 성격 나오겠지? 긍정형인가 부정형인가를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어느 쪽이 더 강한가에 따라 상대방의 미래를 엿볼 수 있어. 긍정과 부정의 차이는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고, 자기 삶을 꾸리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거든. 긍정의 자애(自愛)야. 즉 자기 사랑이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잖아? 참 좋은 탐색 방법이지? 물론 긍정이건 부정이건 간에 그 정도가 있을 수 있고 배경이 있을 수 있어. 그건 상황에 따라 현장에서 네가 직접 파악해야 해. 이게 첫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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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애(自愛) 자신을 사랑하라! ⓒ 손인식

"둘째는 뭐예요?" 

"둘째? 꿈의 유무야. 꿈이 있다 또는 없다 어떻게 대답을 하든 그에 따라 다음 질문을 쉽게 이어갈 수 있을 거야.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묻지 않아도 그 꿈과 배경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물론 상대방이 꿈이 없다고 할 수도 있어. 그렇다면 왜 없는지 그것도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는 부분이잖아? 꿈의 유무는 그 사람에게 진취성이 있느냐 없느냐야. 창의성과도 연결이 돼. 

네가 네 꿈을 위해 미국의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도 과감하게 한국으로 갔듯이 말이야. 꿈을 가진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거잖아. 꿈은 노력하게 하고 결단하게 하지. 그래서 내일 바뀔 꿈이라도 오늘 꿈을 가져야 해. 아마 앞의 첫째 질문들에서 부정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면 꿈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을 거야. 구구한 변명이나 늘어놓을 것이고" 

"그럼 이미 게임 끝난 거네요? 누가 그런 사람을 이성 교제 대상으로 사귀고 싶겠어요?"

후배의 부인이 맞장구를 쳤다. 딸에게 들으라는 듯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 때쯤 상대방이 너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어. 곧 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없는 꿈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그래서 다음 질문이 필요해. 상대방의 성실성에 대해 파악해 보는 거야. 아무리 좋은 꿈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헛된 망상에 불과하거든."

"세 번째 해야 할 질문이 그거네요?"

"빙고…… 상대가 가진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거야. 실천력 테스트지. 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네 전공을 선택했고, 오늘도 그에 관련 서적을 보며 공부를 하며 미래를 꿈꾸잖니? 꿈이 있는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아무 것도 하지않고 있다면 그건 불성실의 표본이야. 구즉필성(求則必成), 실천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 실천하지 않는 거나 꾸며댄 거나 둘 다 도긴개긴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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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즉필성(求卽必成)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 손인식

나의 이 이야기는 후배의 딸에게 처음 한 것이 아니다. 내가 미술대학에 출강하던 십수 년 전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다. 과의 특성상 여학생들이 많았다. '좋은 남자 친구를 고르는 방법'을 말하겠다고 하니 영문을 알 리 없는 여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몇 안 되는 남학생 중 기대했던 한 학생을 향한 것이었다. 그 학생은 입학 때 과 수석 합격을 했고 다방면에 가능성이 점쳐지는 학생이었다. 한때는 과 대표를 맡아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그래 저런 친구가 예술을 해야 해" 하고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예술가는 자기가 하나의 우주야. 예술가는 창조자야. 신의 면허를 받은 사람들이지. 창작은 자기가 하지만 그 작품은 세상의 것이야. 항상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있는 것이 예술품이야. 그러므로 마음이 커야 하고 깊어야 해. 예술가는 죽어도 작품은 남아. 사람의 감성을 울리는 예술이야말로 큰 학문이야. 책임감을 가져야 해."

선생으로서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까지 강조했던 것은 가능성이 많은 학생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대를 했던 그 학생이 어느 순간부터 긍정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학교생활을 불성실로 일관했다.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물론 강의 시간에도 항상 늦었다. 알아보니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도 강의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어슬렁거리며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 학생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갈 이야기가 뭘까 싶었다. 나는 우선 그 학생이 여학생들이 선망하는 남자친구 대상이 되기를 바랐다. 충분히 그럴만한 자질을 지닌 학생이었다. 

아울러 미래의 예술가들이 긍정적이고 창의적이며 생각한 것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미가 담긴 이야기였다. 이렇게 오래된 사연이 담긴 이야기를 명절을 쇠로 인도네시아에 들른 후배 딸에게 들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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