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일 토요일

키성장

부모 불안감 먹고 크는 '성장클리닉' 

키가 경쟁력·스펙? 

"늦으면 안 된다"는 말에 

연 1000만원 호르몬주사… 고가 운동·수면 기구 불티 

질환이라면 몰라도… 

"저성장증 등 원인 아니면 적정 운동·숙면으로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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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3000만원쯤 쓴 것 같아요. 제 키가 160㎝인데, 딸아이는 최소한 저보다는 컸으면 해서 성장 주사와 초경을 늦춰준다는 성장호르몬 억제 주사를 병행하면서 맞혔거든요. 아이가 아프고 힘들다고 괴로워했지만 제가 고집을 부렸고요."

서울 대치동에 사는 회사원 김모(45)씨는 딸아이가 아홉 살일 때 성장 주사를 맞게 했다고 했다. 또래보다 8㎝가량 작아서 늘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동네 신경외과에서 '키 클리닉을 운영한다'는 광고를 보고 데려갔다고 했다. "주사를 꾸준히 맞힌다면 또래 평균 키만큼은 따라잡을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열한 살이 됐을 때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끊고 성장호르몬 억제 주사도 맞히기 시작했다. 가슴에 멍울이 잡히기 시작했는데 "초경이 시작되면 키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딸아이가 주사 맞는 걸 괴로워해서 몇 개월씩 주사를 쉬기도 했다. 이제 딸아이는 열세 살. 지난 4년 동안 25㎝가 자라서 152㎝가 됐다. 또래 평균 키를 따라잡았지만, 이제는 또 생리가 시작되지 않아 고민이다. 김씨는 "솔직히 돌아보면 주사를 맞혀서 이만큼 컸는지, 원래 클 키여서 자란 건지 헷갈리긴 한다"면서 "그래도 주사를 맞히지 않았다면 '부모로서 할 도리를 다 못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을 것 같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성장호르몬 주사제 판매액은 최근 1000억원을 넘어섰다. 전국에 들어선 양방 또는 한방 '키 클리닉'만 500여 곳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 병원들 가운데 무조건 "키를 크게 해주겠다"고 홍보하는 곳이 있다는 것. 성장호르몬 주사는 실제로 성장호르몬 분비가 현격하게 적은 소위 성장호르몬 결핍증 또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 같은 질병으로 저성장증을 보이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1년에 1000만원가량씩 들지만 "일단 맞혀보라"고 권유하거나 일단 값비싼 한약이나 보조제 복용부터 권하는 곳도 있다. 주부 백모(39)씨는 일곱 살 난 아들과 한의원에 갔다가 한 달 200만원가량 하는 한약 복용을 권유받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먹여야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늦으면 안 된다'는 말에 덜컥 겁부터 나더라고요.

유은경 분당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장호르몬 결핍증을 앓고 있거나 터널증후군, 프레더윌리증후군 같은 질환 때문에 성장이 잘 안 되는 경우, 특별한 이유 없이 키가 또래보다 턱없이 작은 소위 특발성 저신장인 경우엔 성장 주사를 맞는 게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이런 경우가 아닌 데도 무조건 더 크고 싶다는 욕심으로 맞는 경우가 문제다.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도 받지 않고 돈을 들여가며 주사나 한약, 보조제에 의지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정상인 어린이가 주사를 맞거나 한약을 먹고 자신이 실제로 자라날 수 있는 키보다 더 컸다는 연구 결과는 보질 못했다. 원래 자랄 키가 더 빨리 자랄 뿐"이라고 말했다.

키 클리닉 시장은 그래도 계속 성장세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키 성장'을 검색하면 산화마그네슘·칼슘 등을 섞어 만들었다는 키 성장 보조제가 수십만원짜리부터 수백만원짜리까지 수십여 건 뜬다.

키 성장을 돕는다는 운동기구도 비싼 가격에 팔려나간다. 한 스트레칭 기구는 가격만 70만~80만원이다. 7분만 운동해도 줄넘기 300번 하는 효과를 준다는 진동 운동기구도 있다. '키가 경쟁력' '키가 스펙'이라는 광고 문구도 따라붙는다. "눌린 성장판의 압박을 풀어줘서 키가 더욱 크도록 도와준다"는 게 이 업체들의 설명이다.

한 달에 수백만원씩 하는 '폭풍성장 헬스 프로그램'도 강남과 분당 일대에선 성행한다. 초등학교 체육 교사인 김원겸(33)씨는 "실제로 올바른 자세와 운동이 키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 값비싼 기구로만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하루 30분에서 1시간씩 햇빛을 보면서 몸을 움직이고 뛰어주면 키는 잘 자란다. 온종일 학원에서 시달리다가 밤에 값비싼 기구로 몸을 푼다고 키가 클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성장판이 자는 동안에만 열린다는 이유로 숙면을 돕는 경추 교정 베개 같은 각종 보조 기구도 불티나게 팔린다. 수면 시장 규모만 2조원대로 추정된다. 고도담 '이브자리' 책임연구원은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밤 9시 전에 반드시 잠드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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