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배신
최근 충격적인 구조조정 소식이 있었다. 구조조정이라는 중립적이고 건조한 표현을 주로 쓰고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라는 수사를 쓰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냥 '대량해고'다. IMF 사태 이후에 워낙 자주 목격했고,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23살 먹은 신입사원에게까지 닥쳤다는 얘기에 공분을 표하는 분들이 많았다.
문제의 그 회사에 속했던 내 지인도 가벼운(!) 면담을 마친 뒤 임원이 "회사에 면담했다는 근거를 보고해야 하니 거기다 싸인해 두고 가라"고 해서 '거기'를 봤더니 다름아닌 사직서였단다… 회사의 명예가 한번 실추되니, 원래는 영업이익이 나는 멀쩡한 회사인데 무리한 인수합병에 들어간 이자 갚느라고 골병들게 만들었다, 영구채가 어떻게 주식이냐, 사람이 미래라더니 '명퇴가 미래다' 등등 여러가지 뒷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출처: 아시아투데이
내게 고민을 상담해도 되냐고 묻던, 그리고 회사의 신흥시장 진출전략을 촘촘히 메일로 물어온 그 회사 K대리. 개인사도 아니고 회사 일로 그러면 안 된다고 하자, 자문료를 물어왔었고, 자문료를 알려주자 그 뒤로는 영 연락이 없는 K대리. 열정이 넘치는 직원이었는데, 반만 살아남는 잔혹한 생존게임에서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모쪼록 건투를 빈다…
내 친정(?) 회사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많은 분들이 회사측에서 '러브레터'를 받았다고 한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러브레터에 많이들 놀라신 모양이다. 최근 전화를 걸어온 선배 한 분이 안부를 묻기에 "저야 맨날 똑같죠 뭐" 하고 대답을 했더니, 똑같은 일상이 너무 부럽단다. 변함없는 일상이 부럽다는 고백…
나도 독립할 수 있을까
요새 진학, 취업, 전직, 독립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내가 진학도, 취업도, 전직도 많이 해봤고, 직장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살려 독립을 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상담을 원하는 층도 고등학생부터 환갑을 넘긴 분들까지 꽤 넓다. 아예 '진로상담'을 내 비즈니스 모델에 한 부분으로 끼워 넣을까 하는 생각도 할 정도다.
역시 가장 치열한 질문은 '나도 독립할 수 있을까'이다.
정답은 정해져 있다. 독립해서 살 수 있으면 독립해라. 말장난이 아니다. 독립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실력만 있으면 독립하는 쪽이 낫다.
일단, 마음가짐
독립을 하면 스트레스가 줄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아를 찾고… 하는 류의 마음가짐을 찾으신다면 다른 글을 읽으시라. 그런 목적으로 독립하는 분들도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벌인, 그리고 계속 벌여갈 독립은 이런 성격이 아니다. 내 스타일에는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독립의 적이다.
독립하면 버는 것이 적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냐는 분들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1) 벌어놓거나 물려받을 재산이 이미 충분하다, 2) 벌던 수준이 워낙 높아서 그 반만 벌어도 실제 사는데 지장이 없다, 3)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걸린 암이 이미 말기다, 4) 이혼을 각오했다 정도의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내 경우는 운이 좋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벌이도 괜찮은 편이다. 나도 직장에서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물론, 일하는 방식들에서도) 간격이 커서 내적 갈등이 있었다. 정말 중요한 세미나에 가야 하는데, 회사에서는 '세미나가 영업에 무슨 도움이 되냐?'면서 말리기 일쑤다. 이젠 어떤 세미나든 내가 궁금하면 간다.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고 정보를 얻는 일이 곧 내 영업활동이다. 갈등은 확실히 많이 줄었다. 그러나, 그 갈등 정도 줄이자고 독립한 것은 아니다.
독립을 위해서는 훨씬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치열한 고민의 핵심에는 역시 돈 문제가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독립하는 편이 직장생활 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도 더 큰 효용이 있어야 한다. 직업을 논하는데, 돈벌이는 도외시하고 자아실현과 꿈만 앞세우는 일은 내 취향이 아니다. 늘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사이에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 직업 문제에서는 돈벌이가 자아실현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내가 독립한 이후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회사에 있으면 정해진 시기에 월급을 받는데, 독립하면 수입이 불규칙해서 불안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건 순전히 관점의 문제다. 수익모델로 볼 때, 회사에 속해 있으면 굵직한 수입원이 하나만 있는 것이고, 독립해 있으면 가느다란 수입원이 여러 개 있는 것이다. 굵직한 수입원 하나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맘이 편하기는 하지만 리스크도 크다. 반면, 가느다란 수입원 여러 개를 관리하기는 힘들지만, 한방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투자에서 말하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포트폴리오 개념을 적용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관점을 디자인하라'의 저자 박용후 씨는 월급을 13번 받는다고 한다. 자문계약을 맺은 기업이 13개나 된다는 얘기다. 하다 보면 몇 군데쯤 경영상태가 나빠져서 계약된 자문료를 지급하지 못할 수도 있고, 환경이 바뀌어 자문계약이 해지되거나 갱신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13군데 모두가 한꺼번에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즉, 일시적으로 수입의 일부가 줄어들 수는 있어도 전체적으로 완전히 끊기는 일은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줄어든 부분은 다시 늘리면 된다. 오랫동안 충성하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나와야 하는, 그래서 수익원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더욱 다르다. 직장생활만 하다가 50세에 퇴직한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약간의 퇴직금만 가지고 있을 뿐 소득을 창출할 다른 수단이 없다. 그러나, 독립한지 5년~10년이 지나 50세에 도달한 경우에는 혼자서 여러가지 소득을 만들어 낼 줄 안다. 물론, 독립에 성공한 경우에 한정되겠지만.
그렇다고 독립에 환상을 가질 일도 아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매년 평균 96만 명이 신규 사업자로 신고하고 약 80만 명이 폐업한다.(주간동아 2015.11._링크) 업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창업 1년내에 대략 50%가 폐업을 한다. 5년내에 70~80%가 폐업한다. 그만큼 어렵다. 기-승-전-치킨으로 사업을 해서는 어렵다.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할 줄 모르는 일을 해서 성공하기는 불가능하다. 정말 '비추'다. 자기 전문분야에서 승부를 내야 승산이 있다.
내 경우도 엄밀하게 얘기하면 '사업'이 아니라 '독립'이다. 조직에 속해서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이제는 혼자서 하는 것뿐이다. 만나는 사람도 똑같고, 하는 일도 똑같다. 게다가 투자라고는 매달 고정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되던 월급, 즉 기회비용뿐이다. 사무실도 없고, 직원도 없다. (독립 초기, 사무실이 어디냐는 집사람 질문에 노트북이 든 백팩을 가리켰더니, 나더러 사무실을 등에 매고 다니는 '달팽이'라고 놀린 적이 있다.)
독립을 하면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 조직에서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도 조직이 하던 모든 일을 해본 사람은 없다. 이제부터 그걸 혼자 해야 한다. 모르는 부분은 배워가면서 해야 한다. 세무처리, 출장준비 등 기능적인 것뿐 아니라 기획, 영업, 수행을 혼자서 해야 한다.
여기서 느끼는 고립감이 독립초기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미 1인기업계의 고전이 된 '프리에이전트의 시대'의 저자 다니엘 핑크도 1인기업에게는 재정적 어려움보다 외톨이가 되었다는 느낌이 더 힘든 것이라고 밝힐 정도다.
독립을 꿈꾸는 분들은 꼭 한번 읽어 보시라. 찾는 분들이 많으면 다시 출판할 수도 있지 않은가…
고립감 문제는 나중에 설명할 '협업전략'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는 조직 안에서 일할 때보다 독립했을 때 주변과의 협력이 더 절실함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직 안에 있을 때는 성격이 좀 까탈스러워도, 심지어 '미친개'란 소리를 들어도 조직이 강제하는 최소한의 협력시스템의 보호 아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독립한 다음에 다른 사람(기업)들과 원만하게 일할 수 없다면, 그건 끝장이다.
독립한 후에도 직장에 있을 때처럼 독선을 떨고, 고집을 피운다면, 박사 학위도 고급자격증도 아무 소용없다. 독립했다고 해서 화성에서 혼자 우주의 미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업계'라는, 직장보다 훨씬 더 큰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숲에 있는 나무처럼 자기 것을 주고 필요한 것을 받아가며 일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래 가려면 '후배'와 함께 가라' 참조_링크)
독립의 마음가짐을 요약하자면, 차분히 준비하되 독립을 선언할만한 준비의 기준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이걸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마냥 준비만 하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나이 마흔을 경계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어떤 계기로 인해 내가 속해있던 회사와 내 개인이 갈 길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준비의 시작으로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전업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직장에 다니면서 part-time으로 공부했다. 그냥 학위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필드에서 해오던 일을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다져서 도약할 발판이 필요했다. 그런데, 박사과정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게 주었다. (이건 별도로 언급해야 할만큼 중요하고 양도 많은 얘기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직한 후에는 계속 독립을 준비했다. 시기는 마흔 다섯살을 목표로 했다. 그쯤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 측이 모르게 '실습'도 했다. 짬짬이 기고도 하고, 자문도 하고, 강의도 해봤다.
그렇게 해서 1년동안 벌어들인 수입이 2달치 정도. 2년 연속으로 그 정도 수입이 되었다. 직장 생활 하면서 알바로 연봉의 2/12를 벌 수 있었으니, 독립해서 전업으로 하면 6/12 즉, 연봉의 절반 정도는 벌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 정도면 일단 우리 가족의 기본 생활비는 되니까. 그 정도가 내 최저기준이었고, 그 때 독립했다. 2014년 4월에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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