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차기를 참 잘 차는 수련생이 있다.
발차기의 높이나 각도, 그리고 스피드나 강도, 모든 면에서 아주 훌륭한 발차기를 차는 수련생이 있다.
그런데, 겨루기만 하면 그 훌륭한 발차기를 한 번도 제대로 차 보지 못하고 스탭과 방어만 하다가 결국은 실점하고 패하고 만다.
관장은 그 수련생을 불러서 "너의 발차기 실력은 최고다! 너의 실력을 믿고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해봐라!"라고 하지만, 번번이 겨루기만 하면 자신의 훌륭한 발차기는 나오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관장이라면 이 수련생을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발차기를 잘 차는 것과 겨루기의 두려움은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발차기를 잘 차도 겨루기에 대한 공포가 있다면 발차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을 관장의 입장에서 잘 할 수 있다는 믿음만을 심어주려 하는 것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수련생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자꾸 겁을 먹는다고 호통치고 화까지 낸다면 그 수련생은 태권도를 아예 포기하려 할지도 모른다.
겨루기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선 어렵겠지만, 맞아보면 된다.
상대의 공격에 맞는 것이 두려운 수련생에게 막연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 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겠지만, 맞아보면 된다.
맞게 되면 맞는 것의 느낌을 알게 된다.
이렇게 했을 땐 상대에게 맞게 되고 저렇게 했을 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맞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두려움은 서서히 사라진다.
두려워하는 수련생에게만 호구를 채우고 평소 친한 수련생이나 좋아하는 선배와 짝을 이루어 공격은 하지 못하도록 하고 방어만 하도록 하여 계속해서 상대로부터 공격당하는 타이밍 훈련을 반복시켜주다 보면 감각이 서서히 살아나면서 상대방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기색을 보일 때가 있다.
일정 기간 동안 방어만을 하는 훈련을 통해 상대방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면 그때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데, 자신이 가장 잘 못 차는 발차기로만 공격할 수 있도록 제한을 시켜준다.
그렇게 상대방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게 되면 그때 비로소 평상시 자신의 훌륭한 발차기 실력이 겨루기에서 발휘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서는 이처럼 커리큘럼에 의해 지도해주어야 한다.
두려움을 없애는 건 '믿음'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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