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1일 수요일

일하면서 배우고 배운대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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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초급장교 교육을 받을 때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중요한 과목 중 하나가 독도법이다. 소대장이 지도를 잘못 읽어서 벌어진 에피소드는 책으로 묶어도 몇 권은 나올 것이다. 독도법이라는 것이 지면에 표시된 정보와 실제 지형을 끊임없이 맞춰 나가면서 익혀가는 것이기에 책 읽고 공부하면서 현실에 적용해 보는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런 점에 꼭 한번 소개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나도 7년이나 지도를 끼고 살았는데...

 

 

내가 1993년도에 소위로 임관해 전방부대에 소대장으로 배치되었을 때 옆 중대 중대장은 특전사 출신의 과격한 (어찌 보면 무식해 보이기까지 한) 대위였다. 아직 보병부대에 적응을 못해서 그랬는지 늘 특전사식으로 부대를 운영했는데, 한번은 전투력 측정의 한 과목인 수류탄 던지기를 너무 심하게 연습을 시켜서, 정작 측정 당일에는 거의 전원이 팔이 빠진 상태가 되어 측정은 하지 못 하고, 측정관들에게 중대장이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중대장에게도 특별하게 잘 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독도법이었다. 원래 특전사 출신 장교들은 지상에서 하는 기동훈련을 꽤 멀리까지 (전해듣기로는 설악산으로 들어가서 지리산으로 나온다는…) 하고 주로 산속으로만 다니기 때문에 5만분의 1 지도를 수십장씩 들고 다녀서 평소 독도법에 익숙하다는 얘기는 들었었다. 그런데, 그 소름끼치는 진가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 대대가 기동훈련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동을 하면서 훈련을 하다 보니 늦은 오후가 되자 시간이 부족했다. 대대에서 임시 회의가 있었고, 산 하나를 밖으로 크게 돌아가야 하는 원래 경로 대신에 산을 가로 질러 가서 시간을 단축하는 것으로 논의가 압축되었다. 

그런데, 그 중대장이 홀로 반대를 하고 나섰다. 질러가는 경로가 폭이 좁고 바닥이 질어서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었다. 대대 작전장교가 그 중대장에게 그 경로를 미리 답사해 보았냐고 물었다.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대장 이하 모든 장교들이 '참 별 거지 같은 소리를 다 듣겠네' 하는 표정으로 그 의견은 간단히 묵살당했다. 그런데, 그 길로 실제 들어서자 폭이 상상 밖으로 좁았고, 땅이 고명 뭍이기 전의 찹쌀떡처럼 질었다. 결국 돌아가는 경로보다 오히려 배 이상 시간이 들었다. 훈련상이지만 작전 실패였던 셈이다. 

 

그 사건이 너무 신기했던 나는 나중에 그 중대장에게 개인적으로 그 비법을 물어봤다. 도대체 가보지도 않은 길을 어떻게 지도만 보고 길 폭과 노면 상태를 그렇게 정확히 알 수가 있을까? 덤덤한, 정말 덤덤한 표정으로 그 중대장이 들려준 대답이다.

 

"지도 상의 등고선 간격만 보면 길 폭이 넓을 수도 있겠지만, 길의 입구와 출구 근방에 인가가 적고 주변에 다른 루트들이 발달해 있는데다, 키 큰 나무가 드물고 잡목이 빽빽하게 자라는 지역이니 다니는 사람들이 적어서 넓은 길이 아닐 것이다. 또, 며칠 전에 눈이 왔는데, 남향이라 겨울 볕에도 눈이 이미 녹았을 것인데 산 밑에서 토질을 보아하니 그 정도 햇볕으로는 다 마를 정도는 아니라 분명 땅이 질척일 것이 뻔하지 않겠나?"

 

무슨 수호지나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직접 보고, 묻고, 들은 실화다. 독도법 교관들이 교육시간에 자주 하던 말이 '지도를 정말 제대로 보게 되면 지도 안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였는데, 실제로 그렇다는 얘기 아닌가? 

소위로 임관해서 첫 임지를 특전사로 배치받아 보낸 고작 5,6년 동안의 시간이 지도에 문외한이었을 한 사람을 이런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을 야외에서 지도와 실제 지형을 맞춰보며 고민하고 연구하느라 지냈을까를 상상해 보고 나서는, 그 중대장이 단순 과격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독도법에 관한 한 그는 군복을 입은 '도인'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지도만 들여다 본 것도 아니고, 돌아다니면서 지형만을 둘러 본 것만도 아니란 것이다. 지도만으로 치자면 지도를 제작하는 육군 지도창의 전문가들이 월등히 나을 것이요, 지형만을 보는 것은 등산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시사철 지도를 둘러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지도와 실제 지형의 차이점을 상황별로, 패턴별로, 요소별로 파악하는 연습을 부단히 한 결과, 처음 보는 지형에서도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우리가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공부만 해서는 실제 일의 세계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일만 한 사람들도 발전이 더디다. 결정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봉착하면 공부한 내용과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다. 더욱 위험한 것은 단순화된 지식과 모듈화된 경험이다. 공부를 할 때 책은 곧 여행할 때 지도다. 지도를 뚫어지게 들여다 본다고 목적지에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앞에 펼쳐진 길을 열심히만 따라간다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공부하는 방법론을 도출해 볼 수 있다. 지도상에서 실제 거리를 축소시켜 나타낸 비율을 '축척'이라 부르는데, 축척이 크다는 것은 축소된 비율이 크다는 것이다. 즉, 좁은 지역을 크게 확대해서 자세하게 보여주는 지도는 대축척 지도로 보통 1:25,000 이나 1:50,000 이다. 이에 비해 소축척 지도는 보다 큰 지방, 국가, 세계지도 등으로 확장해 볼 수 있다. 

만약 서울에서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친구를 육로를 통해 찾아간다고 가정해 보면, 한국과 유럽이 동시에 나온 세계지도를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국에서 프랑스는 서쪽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친구를 찾아갈 수는 없다. 중간에 어떤 국가들이 있는지, 국경을 넘는 주요 철도나 도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마지막에는 파리 시내에서도 매우 구체적인 지리를 알려주는 대축척 지도를 봐야 할 것이다. 

 

공부도 초기에 방향을 잡아주는 책을 읽고, 일단 일을 시작한다. 일하다가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면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해결책을 찾아본다. 책에서 말하는 이론을 자기 현실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이런 과정의 반복이 전문가가 되려는 공부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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