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8일 일요일

‘지적 노가다’에 만족하지 말라


‘지적 노가다’에 만족하지 말라 

개발마케팅연구소 이웃추가 | 2시간전

 

지식 노동자들은 고민이 많다. 돈을 벌어주는 것이 '자산'인데, 육체노동자는 몸에 벤 노동 그 자체가 자산이며 늙지 않는 한 진부화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다. 지식이 유일한 자산인 지식노동자는 지식이 진부화 즉, 시대에 조금만 뒤쳐지면 바로 도태를 걱정해야 한다. 

 

비록 전부는 아니라 해도, 육체노동자는 고유한 기술만 있으면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상태가 옛날보다 좋아지면서 직업 안정성이 좋아지는데 비해, 지식 노동자는 컴퓨터의 등장 이후 급격하게 불안한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뉴욕시장을 지낸 부자 아빠인 블룸버그가 최근 "대학가지 말고 배관공이 되라"고 조언을 했겠는가. (기사 링크)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대다수는 지식노동자일 것이다. 혹시 본인이 지식노동자라는 아이덴티티가 흐릿하다면 다른 책을 읽어서라도 하루 빨리 제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사무실에 앉아서 문서로 일하고, 그 일의 대가가 주된 수입원이라면, 당신은 지식노동자다. 그게 사원이든 사장이든 그냥 지식노동자다. 

 

지식에 투자하라

 

스스로가 지식노동자인줄 알면서도 지식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직업적으로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있거나 스스로를 암매장 하고 있는 중이다. 지식은 자산이므로 중간중간 자본적 지출(Capital Expenditure)가 있어야 한다. 이걸 게을리 하고 감가상각만 하고 있으면, 지식이라는 자산은 금방 못 쓰게 된다. 

 

대학에서 어렵게 배워 온 지식이지만, 회사에서 보면 그 감가상각 기간은 길어야 6개월이다. 입사후 6개월이면 대학에서 가져온 밑천은 바닥을 보이는데, 많은 신입사원은 자신이 취업한 사실에 안도하며 방심한다. 그 방심이 오래 가면 머리숱이 적어지고 귀밑머리가 희어질 때 '잉여인간'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옷 사고, 여행 다니며, 취미생활 하는데 돈 쓰는 것을 자신에게 '투자'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식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 없이 그런 주변적인 투자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은 '품위유지형' 직장인에 한정된다. (품위유지형 등 직장인 유형분류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해 보자)

 

지시대로 자료 모으고, 문서 베끼고, PT 자료 만들고, 브리핑 하고… 이런 일이 지식노동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지식에 대한 투자가 필요없다. 그건 그냥 지식 '노가다'니까. 노가다는 투자하지 않는다. 몸과 세월을 소진할 뿐이다.

 

 

Intellectual labor를 '지적 노가다'로 정의한 이런 명문… 

 

투자없는 지적 노가다 사례: '노동의 분할'이라는 웃픈 이야기

 

'지적 노가다'는 어떤 직군에도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또 외국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번역가라는 직업이 익숙하기도 하고 또 가끔이지만 직접 번역 일을 하기도 한다. 이 번역이라는 일이 대표적인 지적 노가다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당신은 공감하시는가? 

 

번역서를 많이 보니까 오역을 만나는 일도 잦다. 오역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이 아닐 때가 많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건 아닌데…'하는 오역들이 있는데, 어떤 단어, 어떤 표현 하나의 오역 때문에 그것이 들어있는 책 한 권이 통째로 신뢰가 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오역일 경우다. 

 

여러분은 '노동의 분할'이라는 표현이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 지는가? 난 처음에 이 표현을 책에서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앞뒤 문맥을 볼 필요도 없이 이것의 원문 표현은 'division of labor'였을 것이다. 그렇다. 여러분이 경제학에 잠시만 관심을 가졌어도 여러분에게도 분명 익숙한 표현인 '분업(分業)'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아담 스미스가 저술한 역사상 첫번째 경제학책이자 지금까지도 바이블로 꼽히는 '국부론'. 거기서도 제1부 제1장에서 노동의 효율을 높여 인류의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 영웅적 발명으로 묘사되면서, 지금까지도 거의 모든 경제학 교과서 초입에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 바로 '분업'인 것이다. 

 

이런 오역을 한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뭐라고 부를까? 책날개에는 번역자가 스스로를 '경영경제 전문번역가'라고 소개한다. S대 경영학과와 K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해 스펙도 빵빵하고 책도 이미 여러 권 번역하여 출간했다고 한다. 뭐가 문제일까?

 

번역 일을 외국 도서를 번역이라는 가공을 거쳐 국내에 판매하는 비즈니스라고 보면, 번역가는 '서비스 제공업자'라고 할 수 있다. 맨날 쓰는 3각역량 모델®을 통해 이 사례를 분석해 보자. 지역, 기능, 품목이라는 프레임워크의 3대축에서 이 번역자는 외국어와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기능'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듯 보인다. (언어는 보통 지역 부분에 속하지만, 번역 자체가 주업이라면 기능이 적당할 것 같다) 

 

그럼, 그에게 '품목'은 뭐였을까? 바로 경제학과 경영학에 대한 지식이다. 요샛말로 '컨텐츠'가 변변치 않은 것이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친숙(?)하다 보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 더 나아가 아무나 번역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치명적인 사태에는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다.

 

이것이 누군가의 단순한 실수를 너무 확대해석 하여 호들갑을 떠는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명의도 오진을 할 수 있고, 특등사수도 가끔 표적을 맞히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기독교계에서 영어의 God을 지칭할 때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이라고 한다. 해당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들이야 이 둘을 구분하지도 않고 구분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절대자를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목사도 없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신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규과정을 거쳐 양성된 사제라면 예외없이, 절대로 그렇다. 

 

경영과 관련된 다른 예를 들어보자. 신문보도를 보면, 연예인 모씨가 김치 사업을 해서 일년에 100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이게 수익(revenue)일까, 이익(profit)일까? 개인사업으로서의 김치 사업이라는 규모를 감안하면 아마도 십중팔구 수익, 즉 매출로 거두어들인 금액일 것이다. 보통 '사업규모'나 '외형'이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접하는 일반인들은, 특히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운영하지 않는 전업주부들은 '벌었다'는 표현에만 의지하여 이것을 이익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익중에서도 매출이익, 영업이익, 세전이익이라는 개념은 가볍게 확~ 건너뛰고, 사업의 결과로 내 주머니에 안착한 돈, 즉 순이익(net profit)으로 받아들이면서 김치 사업의 놀라운 사업성에 감탄하여 '여보, 나도 김치 맛있게 하는데 이 참에 사업으로 키워볼까?'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전업주부가 이런 오해를 하는 것,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부나 산업전문 기자가 그렇게 기사를 적는다면, 그걸 뭐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예. 예전에 어떤 일본 TV 앵커가 'X-mas'를 '엑스마스'로 읽었다가 안타깝게도 바로 짤렸다는 얘기는 또 어떤가? 여기서 X는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 즉 그리스도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머릿글자로, 'X-mas'라는 축약어는 그냥 Christmas(크리스마스)로 읽어야 한다. 그 앵커가 방심한 탓에 기계적으로 알파벳을 읽어나갔다고 관대하게 봐줄 수는 없었던 걸까? 오, 노~~ 방송을 보는 시청자는 그럴 수 있어도, 이 정도 기본적인 단어에 대한 지식은 아나운서에게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방송국은 그가 '엑스마스'로 읽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방송국을 대표할 앵커로서의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시 '노동의 분할' 얘기로 돌아가 보자. 결론적으로, 그 번역자는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니, 이런 저런 경제학자들의 분석과 예측들은 많이 얻어 들었을 수 있으나, 기초를 공부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적어도 '경영경제 전문번역가'라는 타이틀은 쓰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앞으로도 계속 그 일을 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 

 

여러분도 자기 분야의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욕심이 있다면, 공부하라. 여러분 자신에게 투자하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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