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5일 일요일

나태함

 

나태함

 

난 나태란 관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자전거는 올라타서 첫페달 밟을 때까지가 제일 힘들지컴퓨터 켜기도자동차 시동걸기도사는 것도 마찬가지야정지상태를 깨는 첫 힘을 쏟는 모멘텀을 줄 의지가 관성이 치여버리는 현상... 난 그것이 자네가 말하는 ‘슬럼프의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해.

 

근데문제는 말야나태한 자신이 싫어진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게으른 일상에 익숙해져서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실은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실은 자네도 슬럼프를,아니 오랜만의 연속된 나태를지금 즐기고 있는 거라면 이 글을 여기까지만 읽어딱 여기까지만 읽을 사람을 위해 덕담까지 한 마디 해줄게. “슬럼프란 더 생산적인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간이다.” 됐지잘 가.

 

하지만위에 쓴 덕담은 거짓말이야너무 오래 나태하면 안돼자아가 부패하거든그러면 네 아름다운 육신과 영혼이 슬퍼지거든그러면 너무 아깝거든그러니까, ‘정말’ 슬럼프아니 나태에서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각오해그리고 이 다음을 읽어.

 

보통 ‘슬럼프’ 상태에서는 정신이 확 드는 외부적 자극이 자신을 다시 바로 잡아주기를 기다리게 되거든어떤 강력한 사건의 발생이나친구/선배의 따끔한 한 마디혹은 폭음 후 새벽 숙취 속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라도… 그런 걸 느낄 때까지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자학을 유보하거든정신 차려 이 친구야그런 자극은 없어아니면 늘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이란 말야그 자극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고그걸 생활의 실천으로 옮기는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그런 자극이 백번 있어도 아무 소용 없단 말야정말 나태에서 벗어날 참이면 코끝에 스치는 바람에도 삶의 의욕을 찾고그러지 않을 참이면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늘 같은 상태라니까?

 

내가 자네만할 때는 말이지가을이면 특히 11월이면,감상적이 되고 우울해지고 많이 그랬거든? " 11월이다감상적일 때다하고 자기암시를 주기도 하고… 그래 놓고는 그 감정을 해소한다고 술도 마시고음악을 듣고… 그러면 더 감상적이 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은근히 즐겼어딱지가 막 앉은 생채기를 톡톡 건드리면 따끔따끔 아프지만 재밌잖아내 젊은 날의 버거움이란 그런 딱지 같은 거였나봐.

 

나도 철이 들었나보지차츰 해결법을 찾았어감정은 육체의 버릇이라는 걸 깨닫게 된거지일조량의 부족,운동량의 부족/담배의 과다… 즐기지 않는 감정적인 문제에 근원이 있다면 그런 거야난 정말 감정에서 자유롭고 싶으면 한 4마일 정도를 달려오히려 술도 되도록 적게 마시지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해꽤 효과 있어.

 

더 근원적인 건 '목표'의 문제야나태는 목표가 흐려질 때 자주 찾아오거든선생님 같은 나이에 무슨 새로운 목표가 있겠니내 목표란 '좋은 선생' '좋은 학자'되는 건데 '좋은이라는게 무척 애매하거든목표는 원대할수록 좋지만너무 멀면 동인이 되기 힘들어그래서 나 같은 경우엔 더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대개 일주일이나 한달짜리 목표들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어? '정말로원한다면 해결은 생각보다 쉬워. '오늘해결하면 되 '오늘'이 중요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뭐 이런 차원이 아니야그냥 오늘 자전거의 첫페달을 밟고 그걸로 만족하면 되그런 오늘들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모이거든나태가 관성인 것처럼 분주함도 관성이 되거든.

 

사실은 선생님도 먼 나라에 혼자 떨어져서 요즘 감정적으로 무척 힘들어그래서 물리적인 생활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육체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했잖아늦게 자지 않고일찍 일어나고술 마시지 않고햇빛 아래서 많이 움직이고 걷고 뛰고 1시간은 색스폰 연습하고몇 글자라도 읽고, 3페이지 이상 글쓰고… 나는 잘 알거든이런 육체적인 것들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나태 속으로 빠지게 되는걸.여러 번 경험했거든.

 

힘 내얘기가 길어졌지내가 늘 그래대신 긴 설교를 요약해 줄게. (선생님답지?)

 

나태를 즐기지 마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마.

몸을 움직여운동하고사람을 만나고할 일을 해술 먹지 말고일찍 자.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해지금 하지 않는다면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야그럴거면 더 이상 칭얼대지 마.

. (마지막이야 잘 들어?)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여전히 너는 너야조금 구겨졌다고 만원이 천원 되겠어자학하지 마그 어떤 경우에도,,.

 

그거 알아모든 것은 흘러지나고 나면 이번 일도 무덤덤해 질거야하지만 말야그래도 이번 자네의 슬럼프는 좀 짧아지길 바래.

 

잘 자.

(아니아직 자지 마오늘 할 일이 있었잖아?)

 

김난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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