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깜짝 선물 준다던 아들이었는데…”



‘이만큼 먹고살 수 있는 게 누구 덕이냐’며 한사코 정부 편을 들던 아버지 박씨는 세월호 사고로 성복이를 잃고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친구들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말하던 고모 박씨도 “애국심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그 배에 금궤라도 실려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어떻게든 배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겠어요?”
여자들은 다른 유족들과 함께 청와대로 갔다. 그 길도 경찰이 막았다. 영정을 가슴에 품은 여자들은 경복궁 앞에 멈춰선 버스에서 내려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영정사진을 들고 가던 큰고모는 “애들 사진을 들고 오밤중에 이게 뭔 생쇼냐”며 눈물을 떨궜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유가족의 상처가 뭔지 대통령에게 직접 말하고 싶은 것뿐인데 시위대 취급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성복이는 옷 정리도 잘 못하고 이불도 제대로 안 개는 아이였다. 어머니 권씨한테 혼도 많이 났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부쩍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여자친구도 사귀며 조금씩 어른이 돼가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 키운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여행 전날 함께 목욕했지요, 아버지 손끝엔 성복이의 체온이…”
성복이의 장례식을 마치고 새로 이사한 집으로 돌아온 온 가족과 친척들은 성복이의 여동생 성혜(14)가 부는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불렀다. 성복이가 살아 있을 때 이미 이사하기로 돼 있던 집이다. 어머니 권씨는 “성복이 없이 새집에 왔지만 성복이는 더 좋은 데, 천국에 갔을 거야”라며 남편을 위로했다. 성혜는 발달장애가 있다. 아버지 박씨는 “성복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동생을 위해 많은 걸 양보하며 살았다”며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한 성복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큰고모에게 성복이는 집안에 하나뿐인 남자 조카였다. 듬직한 녀석이 악기도 잘 다뤘다. “바이올린, 피아노, 오카리나까지 잘 연주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 봉사를 하기도 했지요. 명절 때 전남 시골집에 오면 찬송가 연주를 해주곤 했는데 이제는 들을 수가 없네요.”
성복이는 어머니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이모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었다. 성복이는 아버지에게 ‘무슨 선물을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면서 ‘깜짝 선물이니까 어머니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었다.
성복이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목욕을 했다. 아내는 “옷 갈아입으면서 친구들한테 맨살을 보여야 하니 잘 씻기라”고 각별히 당부했다. 사내녀석들 앞에서도 아들이 잘 보였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에서였다. 아버지 손끝에는 아직도 그날 등을 밀어주며 느꼈던 아들의 체온이 남아 있다. 그런 아들이, ‘귀여운 비밀’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하던 그 아들이 이제 곁에 없다.
“시계는 살아 있어, 시계는 가고 있어…어떡해…”
반월공단 중장비 부품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도, 요양사를 하는 어머니도 늘 바빴다. 밤근무가 잦았다. 그래서 아들이 수학여행 떠날 때 어떤 옷을 챙겨 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충치 하나 없고, 상처 하나 없고, 코 크고, 손가락 길고, 입술 두툼하고, 앞니가 다소 벌어졌고. 아이의 작은 것 하나까지 다 아는 부모였지만, 옷차림을 몰라 행여 아들을 못 찾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성복이는 학생증도 들고 다니지 않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저장해두는 아이였다. 아들을 알아볼 수 있는 명확한 단서는 딱 하나, 하얀색 손목시계뿐이었다. 아들이 시계를 손목에서 풀어놓지 않았기만을 바랐다.
2일 오전 7시30분. 진도체육관 대형 모니터에 새벽 4시43분에 수습한 ‘223번 주검’의 특징이 떴다. 검은색 나이키 후드, 청록색 아디다스 빨간 줄무늬 바지, 하얀색 카시오 손목시계. 가족들의 눈에 하얀색 손목시계가 들어왔다.
큰고모 박씨가 흐느꼈다. “성복이가 세뱃돈으로 산 시계를 자랑했어요. 깊은 수심에서도 방수가 된다고. 그런데 이렇게 깊은 물속에 들어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경찰은 아버지와 고모에게 ‘223번 박성복’이라고 적힌 투명 비닐봉투 속 흰색 카시오 시계를 보여줬다. “오빠, 시계는 살아 있어, 시계는 가고 있어. 어떡해….” 아버지 박씨는 그날 소리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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