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1일 수요일

이성주 언론노조 MBC본부장(이하 노조위원장)이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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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위원장은 16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서울 여의도 MBC 로비에서 '지금이라도 사죄해야 한다'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 언론노조 MBC본부

19일 오전 이성주 언론노조 MBC본부장(이하 노조위원장)이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삭발한 이 위원장은 흐느끼면서 MBC 세월호 침몰사고 보도와 간부들의 막말을 회사를 대신해 사과했다. 앞서 지난 16일 이성주 위원장은 안광한 사장을 향해 "국민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했지만, 안 사장은 외면했다. 

침묵하고 있는 MBC를 향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MBC는 자사 보도를 사과하기는커녕 자화자찬했다. 안 사장은 지난달 25일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특보방송은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모두들 힘든 가운데서도 온몸을 던져서 제 역할들을 해준 덕분에 우리 뉴스가 다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반면 KBS는 기자들의 요구로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뉴스9>에서 자사 보도를 반성했다. 또한 KBS노조와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등 양대 노조는 KBS 공정성·독립성 보장과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MBC 기자들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 이상의 적극적인 행동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MBC에서도 '보도국장의 폭로'가 있었다면?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 KBS와 MBC 모두 큰 비판을 받았다. 공영방송인 두 방송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와 정부의 구조 활동을 부각시키면서, 초동대응 미흡 등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많은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은 이들 방송사의 취재 요청을 거부했다.

MBC 노조는 21일 내놓은 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 보고서에서 지상파 방송3사 중 정부 비판 보도가 가장 적었던 곳이 MBC라고 밝혔다. 노조가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한 달 동안 <뉴스데스크>를 살펴본 결과, 정부 비판 보도는 23건에 불과했다. 이는 KBS(68건)·SBS(66건) 메인뉴스의 1/3의 수준이었다. 또한 MBC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다른 곳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두 방송사 중 비판에 먼저 고개를 숙인 곳은 KBS였다. 지난 7일 '막내기자'들의 반성문이 나왔다. 같은 날 MBC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 책임자인 박상후 전국부장은 이날 <뉴스데스크> 데스크 리포트 코너에서 일부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 때문에 민간잠수사가 숨졌다는 취지의 논평을 내놓았다.  

이후 두 방송사의 행보는 크게 엇갈렸다. KBS에서는 막내기자들의 반성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KBS 기자협회는 13일 길환영 사장의 퇴진과 반성 보도를 요구하며 뉴스 제작 거부를 결의했고, 결국 <뉴스9>에서 자사의 보도를 반성하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이후 청와대가 KBS 보도·인사에 개입했다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가 나오면서, KBS 구성원 전체가 반발했다. 결국 양대 노조는 총파업을 위한 찬반 투표에 나섰다.  

MBC에서도 12일 자사 보도를 반성하는 기자들의 성명이 나왔다. 1997년 입사한 30기 이하 기자 121명은 국민에게 사죄했다. 박상후 전국부장 등이 유가족을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후, 지역 MBC 기자들도 사죄문을 내놓았다. 하지만 MBC의 반성 보도는 없었다. 한 기자는 "MBC에서도 구체적인 보도 개입 폭로가 있었다면, 기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 때릴 수 있지만, 많이 맞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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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8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조직개편에 항의의 의미로 삭발한 카메라 기자들과 MBC 노조원들이 파업 종료 뒤 진행된 보복인사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MBC 구성원들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 MBC 구성원은 "2012년 파업 이후 투쟁 동력이 떨어졌다"면서 "이 국면에서 일어나서 한 대 때릴 수 있겠지만, 더 많이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2012년 김재철 당시 사장을 상대로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지만, 그 뒤 탄압이 이어졌다. 

당시 6명의 기자가 해고됐다. 또한 파업 이후 징계를 받은 직원은 160여 명에 달한다. 특히 보복 인사는 MBC 구성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회사는 2012년 7월 노조가 파업을 마무리하고 복귀하자, 파업에 참여한 50여 명의 조합원을 본래의 업무에서 배제하는 인사발령을 내렸다. 

회사는 14일 파업에 참여한 바 있는 기자 2명을 보도업무와 관련 없는 경인지사로 발령냈다. 이를 두고, MBC 노조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규를 상식에 어긋난 폭력적 부당인사로 입을 막겠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회사는 지금까지 시용기자를 포함해 파업 대체인력으로 50여 명을 뽑았다. 이번에도 10명 이상의 데스크급 경력기자를 채용하고 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한 권성민 PD는 지난 17일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 올린 글에서 "MBC에서는 아주 사소한 반발로도 취재 업무를 빼앗긴다,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어떤 기사든 써낼 기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함께 싸움에 참여했던 지난번과는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똑같은 싸움을 다시 시작하면,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 너무나도 손쉽게 자신들의 입맛대로 구성원을 교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MBC에서 해직된 이상호 <GO발뉴스> 기자는 "능력 있는 기자들이 좌천되고, 정치편향적인 인사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해, MBC 뉴스가 망가졌다"고 비판했다. 실제, 김재철 전 사장의 측근들은 대거 영전했다. 노조의 파업 당시 조합원들의 징계를 주도한 안광한 부사장은 사장 자리에 올랐다. 또한 이진숙 보도본부장은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지었던 인물이다. 

이성주 위원장은 "(2012년 파업으로) 170일 동안 싸웠지만, 바꾸지 못했다"면서 "그 끝나지 않은 투쟁의 결과는 (정권의) 완전한 (방송) 장악이라는 더 심한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 기자는 "바로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많은 기자들이 보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라며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중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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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묻습니다
길환영 KBS 사장 퇴진요구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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